오토트리뷴 신차/출시 2026.06.29 12:05

"엠블럼 떼라"... 페라리 10억짜리 전기차, 독설에도 ‘88'대 빛의 속도 완판

[오토트리뷴=김예준 기자] "엠블럼을 떼야 한다." 23년간 페라리를 이끌었던 루카 디 몬테제몰로 전 회장이 페라리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 '루체' 공개 직후 날린 독설이다. 그럼에도 루체는 중국 시장 초기 배정 물량 88대를 완판하며 전 회장의 우려를 비웃듯 시장에 안착했다. 루체 /사진=페라리 페라리는 지난 5월 이탈리아에서 루체를 세계 최초로 공개한 데 이어 최근 중국 시장에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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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트리뷴=김예준 기자] "엠블럼을 떼야 한다." 23년간 페라리를 이끌었던 루카 디 몬테제몰로 전 회장이 페라리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 '루체' 공개 직후 날린 독설이다. 그럼에도 루체는 중국 시장 초기 배정 물량 88대를 완판하며 전 회장의 우려를 비웃듯 시장에 안착했다.

루체 /사진=페라리
루체 /사진=페라리

페라리는 지난 5월 이탈리아에서 루체를 세계 최초로 공개한 데 이어 최근 중국 시장에 공식 출시했다. 루체는 페라리 브랜드 역사상 최초의 순수 전기 모델이라는 점에서 출시 전부터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1000마력 이상의 출력을 갖춘 4도어 전기 세단으로 설계됐으며, 아이폰과 맥북의 디자인을 탄생시킨 애플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가 외관 디자인에 참여해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루체 /사진=페라리
루체 /사진=페라리

판매 가격은 398만 8천 위안, 우리 돈으로 약 8억 원 수준이다. 유럽 출시가(55만 유로, 약 10억 원)보다 약 7% 낮게 책정됐다. 통상 수입세 등으로 중국 판매가가 본국보다 높게 형성되는 페라리의 다른 모델들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가격 전략이다.

그러나 베일을 벗은 루체의 외관은 찬사보다 논란을 먼저 불러왔다. 페라리 특유의 낮고 날카로운 전면부와 공격적인 실루엣 대신 둥글고 정적인 선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브랜드를 모욕했다", "중국도 따라 하지 않을 디자인"이라는 혹평까지 나왔다.

루체 /사진=페라리
루체 /사진=페라리

가장 강력한 비판은 내부에서 나왔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23년간 페라리를 이끌며 브랜드의 전통적인 슈퍼카 철학을 확립한 몬테제몰로 전 회장은 루체에서 페라리의 헤리티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격노했다.

엠블럼을 떼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페라리 팬들 사이에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몬테제몰로 전 회장 재임 시절 페라리는 F40, 엔초, 라페라리 등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카들을 연이어 탄생시키며 브랜드 헤리티지를 공고히 해왔다.

루체 /사진=페라리
루체 /사진=페라리

현 경영진이 전기차 시대를 맞아 대중적 감성과 실용성을 품은 방향으로 노선을 틀면서 전통주의자들과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중국에 배정된 초기 물량 88대는 출시와 함께 완판됐다. 숫자 '8'이 발음상 중국어로 '번영'과 '부'를 뜻하는 단어와 유사해 중국에서 최고의 길한 숫자로 통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88대라는 초기 물량 설정 자체도 의미심장하다. 중국 최상위 부유층을 겨냥한 전략적 선택으로 읽힌다.

SU7 울트라 프로토타입 /사진=샤오미
SU7 울트라 프로토타입 /사진=샤오미

기술 사양만 놓고 보면 루체는 가격 경쟁력과 성능 면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토종 전기차 브랜드들을 상대하기 쉽지 않다. BYD, 샤오미, 니오 등 중국 브랜드들은 루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고성능 전기차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페라리는 처음부터 이 경쟁의 판에 루체를 올리지 않았다. 경험과 럭셔리, 브랜드 명성에 집중한 5인승 그랜드 투어러로 포지셔닝하며 중국 최상위 1% 부유층만을 겨냥한 전략이다. 400만 위안을 아무렇지 않게 지출할 수 있는 초고액 자산가 고객층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기술 사양표의 숫자가 아니라 페라리라는 이름이 주는 상징성이기 때문이다.

루체 /사진=페라리
루체 /사진=페라리

이런 맥락에서 88대 완판은 단순한 판매 실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 회장의 독설과 디자인 혹평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초고액 자산가들은 지갑을 열었다.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페라리의 브랜드 헤리티지가 전기차 시대에도, 심지어 가장 까다롭다는 중국 럭셔리 시장에서도 여전히 강력하게 통한다는 방증이다.

물론 88대라는 숫자 자체는 중국 전기차 시장 전체 규모에 비하면 극히 미미하다. 루체가 중국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성공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적어도 초반 시험대에서는 합격점을 받았다.

김예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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