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트리뷴 업계/브랜드 2026.10.23 19:20

“왕의 차가 왜 단 6대뿐?”... 부가티 로얄, 100주년에 다시 모였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몰샤임에 모인 타입 41 로얄 3대 /사진=부가티 탄생 100주년을 맞아 몰샤임에 모인 타입 41 로얄 3대 /사진=부가티 [오토트리뷴=정다은 기자] 부가티가 22일 타입 41 로얄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브랜드의 대표적인 유산을 재조명했다. 1926년 처음 선보인 로얄은 에토레 부가티가 황제와 왕, 왕비에게 어울리는 차를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개발한 모델이다. 차체 ...
이 페이지는 외부 RSS를 바탕으로 정리한 요약 정보입니다. 자세한 내용과 정확한 표현은 원문 보기에서 확인해 주세요.
탄생 100주년을 맞아 몰샤임에 모인 타입 41 로얄 3대 /사진=부가티
탄생 100주년을 맞아 몰샤임에 모인 타입 41 로얄 3대 /사진=부가티

[오토트리뷴=정다은 기자] 부가티가 22일 타입 41 로얄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브랜드의 대표적인 유산을 재조명했다. 1926년 처음 선보인 로얄은 에토레 부가티가 황제와 왕, 왕비에게 어울리는 차를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개발한 모델이다.

차체 길이는 6m를 넘고 휠베이스는 약 4.3m에 달했다. 양산형은 12.8리터 직렬 8기통 엔진으로 약 300마력을 냈다. 무게 약 3.5톤의 거대한 차체를 움직였으며, 부가티가 제시한 최고속도는 최대 시속 200km다.

첫 시제차의 엔진은 약 14.7리터로 이후 모델보다도 컸다. 드라이섬프 윤활 등 당시의 대담한 기술을 담았지만, 완성된 로얄은 결국 6대뿐이었다. 각 차는 서로 다른 차체를 입어 저마다 고유한 모습을 갖췄다.

에토레 부가티의 개인 차량이었던 로얄 쿠페 나폴레옹 /사진=부가티

차체마다 다른 이야기

차체 제작에는 부가티와 함께 웨이만, 켈너, 바인베르거, 빈더, 파크 워드 등 코치빌더들이 참여했다. 같은 기계적 구성을 바탕으로 제작사와 소유자의 취향에 따라 차의 형태가 달라졌다.

쿠페 나폴레옹이 된 시제차도 여러 차례 다른 차체를 입었다. 웨이만이 만든 차체가 1930년대 초 사고로 파손된 뒤 장 부가티가 새 디자인을 맡았다. 유리 지붕으로 뒷좌석에 빛을 들이고 앞쪽 운전기사 공간을 분리한 이 차는 에토레 부가티의 개인 차량이 됐다. 현재 프랑스 뮐루즈 국립자동차박물관 슐룸프 컬렉션에 있다.

첫 개인 고객인 파리의 섬유사업가 아르망 에스데르는 섀시 41111에 장 부가티가 디자인한 로드스터 차체를 주문했다. 낮에만 운전할 계획이어서 헤드램프를 아예 넣지 않았다. 오늘날의 쉬르 메쥐르와 프로그램 솔리테르보다 훨씬 앞서 고객의 생활과 취향을 차에 반영한 사례다.

경제위기를 넘은 가치

작은 부품에도 공을 들였다. 에토레는 1932년 브레게에 로얄의 운전대 중앙에 넣을 기계식 크로노그래프 9개를 주문했다. ‘부가티를 위한 특별 제작’이라는 문구와 함께 시간 측정, 속도 측정, 8일 파워리저브 기능을 담았다.

그러나 로얄이 등장한 시기는 상업적으로 불리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극소수 부유층을 겨냥한 차의 수요가 줄면서 계획했던 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이후 희소성과 제작 가치를 인정받았고, 켈너 차체의 로얄은 1987년 11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 자동차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유리 지붕으로 빛을 들인 쿠페 나폴레옹의 실내 /사진=부가티

부가티는 지난 9월 몰샤임에서 열린 부가티 페스티벌에 로얄 6대 가운데 3대를 모았다. 쿠페 나폴레옹과 함께 아우토슈타트 소장 빈더 모델, 파크 워드 리무진이 고객과 수집가, 애호가들을 만났다. 빈더 모델은 에스데르의 로드스터로 출발했다가 방탄 쿠페 드 빌로 바뀌었고, 파크 워드는 1933년 영국 고객에게 인도됐다.

오늘까지 이어진 유산

세 차는 서로 다른 차체 속에서도 호두나무 운전대와 고래수염 소재 손잡이 등 공통된 세부를 지녔다. 라디에이터 위에는 에토레의 동생 렘브란트가 조각한 코끼리 장식이 자리한다. 부가티는 베이론과 시론, 투르비옹으로 이어지는 성능·디자인·장인정신의 뿌리를 로얄에서 찾았다.

부가티의 유산·인증 전문가 루이지 갈리는 “로얄은 에토레 부가티가 만든 거의 모든 차보다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크면서도 우아할 수 있고, 거대한 힘도 세련될 수 있으며, 공학과 예술, 인간적인 손길을 결코 분리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이야기들은 자동차 너머에서 차를 탄생시킨 사람과 상상력, 타협하지 않는 야망을 이해하게 한다. 로얄이 부가티의 살아 있는 유산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남고, 앞으로 수많은 세대에 걸쳐 소중히 여겨질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다은 기자 [email protected]

조회수 6
외부 클릭 1